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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카이로스 news] [사도 바울 성지순례]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15.01.05~17


[사도 바울 성지순례]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사도 바울의 전도여행 길 따라 밟으며

영혼의 때를 위해 믿음의 길 달리리라 다짐해

 

손석원 담임목사를 비롯한 44명의 성도들이 지난 1월 5일(월) 출발하여 1월 17일(토) 까지 사도 바울 성지순례를 다녀왔다. 사도 바울 성지순례는 터키, 그리스, 이탈리아(로마)에 이르는, 사도 바울이 걸었던 전도 여행의 발자취를 따라 밟는 것이다.

 

<사진 설명> 인천 공항에서 성지순례 일정을 출발했다.

  

1월 6일 0시 5분에 인천 공항에서 출발,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 공항을 경유하여 합산 15시간가량의 긴 비행 끝에 터키 이스탄불의 아타튀르크 공항에 도착했다. 터키 지역의 가이드 김홍기 목사와 합류하여 1월 6일(화) 첫날의 성지순례 일정을 시작했다.

 

첫째 날(6일)에는 성 소피아 교회, 히포드롬, 블루 모스크, 그랜드 바자르를 둘러보고, 보스포로스 해협에서 크루즈 관광도 했다.

 

<사진 설명> 성 소피아 교회의 엡시스다. 예루살렘 방향으로 되어있어 이쪽으로 예배드렸다.

곳곳에 이슬람 사원으로 사용된 흔적도 남아있다.

  

성 소피아 교회는 로마의 두 번째 수도였던 콘스탄티노폴리스(현. 이스탄불)에 세워진 대표적 건물로서, 기독교 국교화 이후 세워진 많은 대형 교회들 중 가장 이른 것이라고 한다. 오스만 터키가 이곳을 정복한 후 이슬람 사원으로 개조되어 사용되었기 때문에, 성 소피아 교회의 내부에는 예루살렘 방향을 향하여 예배를 드리던 교회의 흔적과 메카 방향으로 예배드리던 이슬람 사원의 흔적이 동시에 남아있다. 성 소피아 교회와 블루 모스크가 서로 마주보고 서있는 것도 색다른 광경이었다. 초대 교회의 발상지이자 사도 바울이 가장 오랜 시간 전도에 힘쓴 터키가 현재는 완전히 이슬람화 되었음을 확연히 알 수 있는 안타까운 장소였다.

 

폭설로 인해 갑바도기아로 가기 위한 비행기편이 취소되기도 하고, 길이 통제되어 발이 묶이는 상황도 있었다. 그래서 둘째 날(7일)은 하루 종일 악사라이에서 버스안과 휴게소를 오가며 머물러 있어야 했지만, 샘깊은교회 성도들은 불평의 말을 한마디도 내뱉지 않고 시종일관 웃고 즐겼다. 이를 통해 가이드와 여행사 관계자에게 “연구 대상입니다”라는 칭찬을 듣게 되었다. 이는 모든 상황 속에서 오직 하나님만 신뢰하기에 가능했던 일일 것이다.

 

셋째 날(8일)에는 하나님의 이끄심으로 무사히 갑바도기아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 날은 갑바도기아 지역의 파샤바, 괴레메 야외 박물관, 데린쿠유를 순례했다.

 

<사진 설명> 갑바도기아 지역의 파샤바. 버섯 모양 기암괴석들이 많다.

이 바위에 구멍을 뚫고 깎아서 교회로 사용했다.

 

파샤바와 괴레메 야외 박물관에서는 버섯 모양의 기암괴석과 바위들 속에 세워진 교회 혹은 수도원을 볼 수 있었다. 교회 내부 벽면에는 예수님의 공생애와 제자들의 사역에 관한 프레스코화가 많이 그려져 있었는데, 성경이 없던 당시의 수도사들이 말씀 공부를 위해 사용했던 것이라고 한다.

 

데린쿠유는 지하 8층 규모의 거대한 지하 도시로 최대 2만 명가량의 사람이 살았던 곳이다. 이곳에서 기독교인들이 로마의 박해를 피해 숨어 살았다고 한다. 핍박 속에서도 오로지 믿음을 지키기 위한 흔적들이 지금도 이곳에 남아있었다. 마지막 때를 살아가는 우리도 곧 다가올 환난 속에서 끝까지 믿음을 지키기 위해 더욱 성령 충만해야 한다. 

 

넷째 날(9일)은 아침 일찍 열기구를 타고 파묵칼레 전 지역을 내려다본 후, 라오디게아 교회, 히에라볼리, 빌라델비아 교회, 사데 교회 등을 방문했다.

 

<사진 설명> 가난했지만 많은 교회들을 도와 칭찬 받았던 빌라델비아 교회이다.

현재는 비잔틴 시대에 세운 교회의 큰 기둥 3개만 남아있다.

 

무역으로 돈을 많이 벌어 부유했으나 영적으로는 가난해 “차지도 않고 뜨겁지도 않다”는 책망을 받았던 라오디게아 교회와, 최초로 금화를 만들어 사용할 만큼 풍요로웠으나 실상은 죽은 믿음을 가져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라는 책망을 받았던 사데 교회를 보았다. 또한 가장 가난했으나 소아시아 내의 300여 개 교회에 성찬식 포도주를 무료로 공급하는 등 가장 많이 베풀고 사랑을 나누어 “작은 능력을 가지고도 내 말을 지켰다”는 칭찬을 받았던 빌라델비아 교회도 보았다. 우리의 하루하루가 주님 앞에 쌓이는 믿음의 날이 되어 마침내 잘 하였도다 칭찬 받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길 소망한다.

 

다섯째 날(10일)은 가죽 공장에 방문해 가죽 패션쇼를 구경하고, 에베소 교회와 에베소 도시, 두아디라 교회, 버가모 교회 등을 순례했다.

 

<사진 설명> 샘깊은교회 성도들이 사도 바울이 걸었던 에베소 도시의 길을 걷고 있다.

 

교역, 교통, 정치, 종교의 중심도시로서, 바울이 2차와 3차 전도 여행으로 방문했던 에베소 도시의 옛 터를 밟았다. 오랜 시간이 지났으나 여전히 반듯하게 남아있는 돌길과 기둥들을 보며 화려하고 번화했던 에베소 도시의 옛 모습을 그려볼 수 있었다. 신전, 아고라, 도서관, 법원, 병원 등의 유적들이 그 흔적을 남겨놓고 있었다. 특히 연극당 내부를 둘러보며, 바울이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은 신이 아니라”고 당당히 증거한 사건을 떠올려보았다. 화려한 신전으로 가득 차 있던 이 도시 한복판에서 오직 하나님만이 유일한 신임을 증거한 사도 바울의 믿음과 용기가 우리의 마음에도 감동을 주었다.

 

또한 사도 바울의 순교 후, 사도 요한이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를 모시고 에베소 교회의 사역을 이어나갔다고 한다. 사도 요한이 사역 끝에 죽어 묻힌 자리에 세워진 사도 요한 기념 교회의 터가 지금도 남아있다.

 

여섯째 날(11일)은 랍세끼 항구에서 배를 타고 겔리볼루 항구로 건너갔다. 이곳에서 김홍기 가이드와 작별하고 김양순 가이드와 만나 그리스의 성지순례 일정을 이어갔다. 이날은 네압볼리, 빌립보, 리디아 교회, 암비볼리, 아볼로니아, 데살로니가를 순례했다. 

 

빌립보 도시도 에베소 도시 만큼이나 크고 번화한 도시였다. 이곳에서 사도 바울은 귀신 들린 여자 노예에게서 귀신을 쫓아낸 일로 매질을 당하고 감옥에 갇혔는데, 그 감옥이라고 추정되는 곳이 지금도 남아 있다. 바울이 감옥에 갇힌 것이 감옥의 간수와 그 가족들에게도 복음을 전하고 침례를 주는 기회가 되었다는 점에서 하나님께서는 택하신 자를 놓치지 않으신다는 사실에 다시 한 번 감사하였다.

 

<사진 설명> 빌립보 교회의 첫 성도 루디아를 기념하는 리디아 교회다.

 

<사진 설명> 리디아 교회의 앞뜰에서 주일 예배를 드리고 있다.

 

도시의 문 안으로 자유롭게 들어올 수 없었던 여성들은 성문 밖의 지각디스 강가에서 만나 얘기를 나누었다. 사도 바울이 기도할 곳을 찾아 강가로 나왔다가 모인 여자들에게 복음을 전했고, 그 여인들 중 루디아라는 자색 옷감 장사가 복음을 받아들이게 되어 유럽 최초의 가정교회인 빌립보 교회가 탄생하게 되었다. 루디아를 기념하는 리디아 교회가 지각디스 강가에 세워져 있었는데, 이 교회의 내부에는 예수님의 공생애와 바울의 생애가 그려져 있으며, 바울이 전도 여행을 다닌 소아시아와 유럽에 이르는 지도가 모자이크로 남아 있다. 이곳 리디아 교회에서 주일 예배와 성찬식을 가졌다.

 

일곱째 날(12일)에는 베뢰아, 메테오라를 방문했다.

 

여덟째 날(13일)은 아테네의 파르테논 신전, 국회의사당, 고린도를 방문한 후 파트라 항구에서 배를 타고 이탈리아로 출발했다.

 

데살로니가에서부터 사도 바울의 전도를 방해하던 유대인들이 베뢰아까지 쫓아와서 소동을 일으켰다. 결국 바울은 급히 배를 타고 아테네로 건너가게 됐다. 데살로니가에서부터 베뢰아, 아테네에 이르는 길을 버스를 타고 달려오며 사도 바울이 걸었던 길에 대해 생각했다. 데살로니가에서 베뢰아까지의 길만 해도 열두 시간을 꼬박 걸어야 하는 거리라고 한다. 복음을 전하다 쫓겨나면서도 또 다시 걸어가며 복음을 전하는 일은 성령님의 이끄심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성령님은 지금 우리의 삶의 현장에도 동일하게 역사하시며 복음을 전하게 하신다.

 

아홉째 날(14일) 아침, 이탈리아 바리 항구에 도착해 가이드와 합류했다. 이날은 폼페이, 쏘렌토를 둘러본 후 로마로 향했다.

 

열째 날(15일)은 콜로세움, 판테온, 트레비 분수, 스페인 계단, 진실의 입, 베네치아 광장 등 로마의 여러 유적들을 관람하고 카타콤베와 성 바울 대성당, 바티칸 시국, 바울 참수터를 순례했다.

 

카타콤베는 고대 로마의 지하 공동묘지로, 데린쿠유처럼 이곳에도 많은 초대교회 성도들이 박해를 피해 신앙을 지키기 위해 숨어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데린쿠유가 나름대로의 사회와 삶의 방식을 갖춘 지하도시였다면, 카타콤베는 바로 옆에서 시체들이 썩고 있는 공동묘지로, 사람이 도저히 살 수 없는 열악한 환경이었다. 빛이 전혀 들지 않고 전염병으로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이곳에서, 발각되면 즉시 죽임당한다는 두려움 속에서, 그들이 기대할 것은 오직 예수님의 재림뿐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무덤의 대리석 뚜껑에 익투스(ΙΧΘΥΣ:하나님의 아들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 낙서를 하며 예수님이 다시 오시기만 기다렸다고 한다.

 

<사진 설명> 사도 바울의 감옥터에 세워진 성당이다.

사도 바울이 순교 전 마지막으로 갇혔던 감옥이 보존되어 있다.

 

사도 바울의 마지막 행적이 남은 참수터에는 두 개의 성당이 세워져있었다. 순교하기 전 바울이 마지막으로 디모데후서를 쓴 감옥 터에 세워진 성당과 바울이 참수된 자리에 세워진 성당이다. 목 베임을 당하여 떨어져 나온 바울 사도의 머리가 바닥을 세 번 튀며 굴러떨어졌다고 전해진다. 순교를 앞두고 마지막으로 쓴 디모데후서에서 사도 바울은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라고 기록하고 있다. 우리도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켜 삶의 끝에서 하나님 앞에 설 때에 예비된 의의 면류관을 쓸 수 있기를 소망한다.

 

성지순례의 모든 일정을 마치고 한식당에서 저녁 식사를 한 후 성지순례 기간 동안의 감사와 은혜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성도들이 동일하게 가졌던 감동은,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하기 위해 힘썼던 것과 많은 믿음의 선배들이 목숨을 내놓으면서까지 믿음을 지킨 것을 본받아, 더 아름답게 믿음의 길을 걸어가야겠다는 것이다. 한상미 집사는 사도 바울의 참수 순교를 이야기하며 “영혼의 때를 위해 살아야겠다”고 말했다.

 

또한 윤철홍 전도사는 성지순례 과정 동안 밟은 터키, 그리스, 이탈리아 땅에 “교회는 많고 성지는 많지만, 참 말씀 참 생수를 모르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며 “그런 사람들에게 생수가 무엇인지 알려 주고 싶고, 샘깊은교회에서 신앙생활하며 참 생수를 마실 수 있어 감사하다”고 말했다. 생수를 마시지 못해 목마른 사람들에게 샘솟듯 솟아나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사도 바울의 한 영혼에 대한 절실함과 애절함을 배워,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도 전도의 역사가 일어나게 되길 바란다.

 

모든 일정을 마치고 아부다비와 인천을 거쳐 17일(토) 교회에 돌아왔다. 2주라는 긴 시간동안 사도 바울의 전도여행 길을 밟으며 많은 것을 보고 경험하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샘깊은교회와 각 성도들의 삶의 현장도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복음의 현장이 되고 성지가 되어갈 것이다. 또한 우리가 달려갈 믿음의 길을 마치고 하나님 앞에 서는 그 날까지, 우리의 모든 삶의 날들이 하나님 앞에 쌓이는 시간들이 되길 원한다. 성지순례 기간 동안 인도하신 하나님께 모든 감사와 영광을 올려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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